
지갑 주소만으로 '똑똑한 돈'을 알아볼 수 있다고요?
블록체인 거래소에서 모든 주문이 공개되면, 누가 '아는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놀랍도록 강력합니다.
들어가며: 익명의 세계에서 누가 정보를 가지고 있을까?
주식시장에서 "큰손"이나 "정보를 가진 투자자"가 누구인지 알면, 우리는 훨씬 똑똑한 투자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주식시장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모든 주문이 익명으로 처리되거든요. 누가 샀는지, 누가 팔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탈중앙화 거래소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블록체인 위에서 모든 거래가 공개되기 때문에, 누가 어떤 주문을 넣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명은 아니지만, 고유한 지갑 주소가 모든 거래에 붙어 있습니다. 마치 익명이지만 매번 같은 닉네임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 논문은 바로 이 특성을 활용합니다. 공개된 지갑 주소만으로 "아는 사람"을 식별하고, 그 정보로 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지 실험한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였나: 익명 주문의 한계
기존의 금융시장 미시구조 이론은 "정보를 가진 거래자(informed trader)"가 익명 속에 숨어 있어야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자신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상대방이 호가를 조정해 이익을 내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탈중앙화 거래소에서는 이런 가정이 통하지 않습니다. 모든 주문이 블록체인에 기록되고, 지갑 주소가 공개됩니다. 그런데도 이 지갑 주소에 담긴 정보를 "가격 예측"에 활용할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없었습니다.
핵심 아이디어: "독성 지갑"을 찾아라
연구팀의 접근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1단계: 각 지갑이 넣은 공격적 주문(시장가 체결 등) 이후 10초 동안 중간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계산합니다. 만약 어떤 지갑의 주문 직후 가격이 그 방향으로 계속 움직였다면, 그 지갑은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2단계: 이 점수를 기준으로 지갑을 순위 매기고, 상위 10%를 "독성(toxic)" 지갑으로 분류합니다.
3단계: 이 독성 지갑들의 실시간 활동(주문량, 호가 범위, 시장 점유율 등 11개 변수)을 기존의 익명 시장 데이터(호가 불균형, 주문 흐름, 가격, 변동성 등 10개 변수)에 추가하여, 1초 뒤 가격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듭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지갑의 "독성" 순위는 시간이 지나도 꽤 안정적입니다. 연속 10일 구간 간 순위 상관(Spearman)이 0.52로, 우연히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상위 10분위 지갑의 91.3%가 다음 기간에도 계속 거래하고 있었습니다.
결과: 무엇을 알아냈나
핵심 수치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예측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1초 뒤 수익률을 예측하는 모델에서, 익명 데이터만 쓰면 R²(설명력)가 10.88%인데, 독성 지갑 정보를 추가하면 12.31%로 올라갑니다. 상대적으로 13.2% 향상된 수치입니다(통계적 유의성 t=9.2).
2. 우연이 아닙니다. 이 향상분은 크기와 활동량이 비슷한 200개의 가짜(placebo) 지갑 그룹과 비교했을 때, 그 중 최대값의 1.6배에 달합니다. 단순히 "많이 거래하는 지갑"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정보를 가진 지갑이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3. 실제 거래 시점에서 효과가 더 큽니다. 모든 시점이 아니라, 실제 체결이 발생하는 순간에만 평가하면, 지갑 정보의 R² 증분이 +2.47%p로 더 커집니다. 이는 유동성 제공자(마켓 메이커)에게 직접적으로 의미 있는 수치입니다.
4. 빠르게 사라지는 정보입니다. 200밀리초에서 30초로 갈수록 이득이 단조롭게 감소합니다. 즉, 지갑 정보가 포착하는 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정보"입니다.

한계와 주의점
이 연구가 흥미롭지만, 몇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탈중앙화 거래소 특유의 결과입니다. 이 연구가 사용한 Hyperliquid는 모든 주문이 온체인에 공개되는 탈중앙화 거래소입니다. 전통적인 중앙화 거래소(예: 나스닥, 코스피)에서는 주문이 익명으로 처리되므로 이 방법을 직접 적용할 수 없습니다. 다만, 증권사나 거래소 내부에서 고객 식별 데이터를 가진 기관이라면 유사한 분석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한 달 데이터입니다. 주 평가 기간이 2026년 7월 한 달이고, 2025년 12월 데이터로 복제 실험을 했습니다. 시장 상황이 바뀌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셋째, 시빌 저항성 문제입니다. 익명 지갑이므로 하나의 실제 주체가 여러 지갑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독성 지갑"이 실제로는 몇 안 되는 대형 플레이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넷째, 선물 시장에 특화된 결과입니다. 현물 시장에서는 적용이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투자/실무엔?
이 연구의 핵심 시사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누가 거래하는지"가 "어떻게 거래하는지"만큼 중요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시장 미시구조 모델은 주문 흐름, 호가 불균형 같은 익명 데이터만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거래 주체의 과거 행동 이력이 추가적인 예측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 블록체인 데이터는 금융 연구의 새로운 실험장입니다. 탈중앙화 거래소의 투명한 데이터 구조는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종류의 연구를 가능하게 합니다. 지갑별 독성 추정, 역선택 측정, 정보 유입 경로 분석 등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온체인 데이터를 다루는 퀀트나 디지털 자산 트레이더에게 즉시 참고할 수 있는 연구입니다. 지갑별 toxicity 점수를 실시간 특징으로 추가하는 것만으로 기존 모델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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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Xiv:2608.04373 — 원문 논문
- 5차원 점수: 신규성 84 / 적용성 86 / 엄밀성 78 / 재현성 42 / 통찰력 88 (composite 73.8, A등급)
- 관련 분과: A4 (시장 미시구조)
- 주요 방법: 지갑별 10초 마크아웃 기반 toxicity scoring + ridge 회귀 예측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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